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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담 주저리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의 원룸 스크루지 넋두리, 그리고 탈출

by 알래스카코코넛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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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학번으로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때는 대면+비대면이 섞여 있어서 굳이 자취방까지 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기숙사에서 계속 지내다가, 2학년이 되면서 기숙사 인원이 너무 많아 자취로 변경하였다. 으레 대학생들이 그렇듯 나도 원룸을 구했다. 나름 최선의 집을 구하고자 부동산을 8군데, 방을 30개 이상 봤다. 

 

모든 원룸이 정말 엉망이었다. 보증금을 최대 3천, 월세 최대 70으로 다른 대학생들에 비해 꽤 높은 상한선을 가지고 있으므로 제법 괜찮은 집만 부동산에서 보여줬음에도 그랬다. 2년 뒤인 지금 떠오르는 케이스에는

  • 화장실에 세면대가 없는 집
  • 2명이 누울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닭장같은 집(본가 화장실보다 작았음)
  • 옆집 기침소리가 들리던 집
  • 쥐 시체가 있던 집(!)
  • 현관은 하나인데 방은 셋이라 누가 봐도 불법 쪼개기한 집
  • 문을 열면 건물 복도가 아닌 바로 도로인 집

이것들이 최소 보증금 500에 월세 55만원이었다. 심지어 이 원룸 주인 양아치들은 월세임에도 무조건 2년 계약이 기본이라고 했다. 보통 월세는 1년, 전세가 2년 아닌가? 그렇지만 다들 그렇게 담합을 하는데 대학생이 어쩌겠는가. 안 들어오면 등교를 못하는데. 이 때 격렬하게 본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돌다 돌다 겨우 조금 넓은 원룸을 발견했다. 옵션이라고는 침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이 다여서 선반, 책상, 심지어 옷장마저 내가 사서 들어왔다. 인터넷도 안 되어서 내가 sk에 전화를 했다. 

 

그렇게 막 입주를 하고 밤에 대부분의 청소를 끝낸 상태였다. 뭔가 쾅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 방은 아무것도 바뀐게 없다. 그렇게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또 그런 소리가 들렸다. 이후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이었다. 옆집 옷장문 닫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리는 거였다. 이때 정말 패닉이었다. 내가 분명 시멘트 벽인걸 확인했는데, 옆집 소리가 내 방 소리처럼 들리지? 답은 간단했다. 벽이 시멘트 벽은 맞는데, 진짜 얇았다.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이제 내 옆집 혐오의 시작이었다.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진짜 상상을 초월했다. 자려고 누우면 옆집이 변기뚜껑 닫는 소리가 쾅쾅 울리고, 윗집 문 닫는 진동에 내 침대가 흔들렸다. 편하게 잠드는건 원룸 세입자에게 사치였다. 2년간 잠은 포기했고, 우울하게 있지 않으면 다행인 나날이었다. 중간에 옆방 주인이 나보다 어린 여자애로 바뀌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친구인지, 원나잇 상대인지 매일 남자를 데려와서 둘이 같이 살았다. 집주인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벽도 두드려봤지만 나아지는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을 원룸에 데려온 적이 없는데, 옆집은 죄책감도 없는지 아예 살림을 차렸었다. 정말 상도덕 없는 서울 원룸과, 얇디얇은 벽을 저주했다.

 

악착같이 2년을 버티고 마침 비는 방이 생긴 친척 댁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이제 이웃의 민폐에서 벗어났지만, 마지막이 하이라이트다. 집주인의 횡포가 남았다. 

 

집주인은 나이 많은 할머니였다. 우선 내가 이사를 가게 된 원인부터 설명하자면, 물론 이웃들이 끔찍한 것도 있었지만 세입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다가 반강제로 쫓겨났다. 월 60만원으로 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은 재계약을 하려면 월 5만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5% 이상을 올리는건 불법이다. 그래서 내가 5% 이상 올리는건 불법이라고 말하니 

"난 늙어서 그런거 모르겠고, 옆집은 다 5만원씩 올렸어."

를 시전했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절대 5% 이상 못 올린다. 부동산 가서 법대로 해라라고 하니 한 3일 있다가

 

"내년부터 내 손자가 와서 그 집에 살 거다. 방 빼라" 라는 전화가 돌아왔다. 

진짜 손자가 와서 사는지, 아니면 보복성 발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후에 서술한 행적을 보니 보복성 발언인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다는데,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통하는 사람과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마친 지금 저 집주인에게 연락할 생각은 없다. 

 

아무튼 저 얘기를 추석때쯤 받았고, 나도 저런 쓰레기같은 원룸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2월, 계약이 종료되는 대로 이사를 준비했다. 여기서 정말 진상_집주인_최종.jpg같은 일이 마지막으로 있었다.

 

앞서 말했듯 옵션이 딱 침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이 다였다. 그런데 여기서 침대를 다음 세입자가 쓰지 않으니 버리라고 했다. 자기가 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버리라고 시켰다. 하지만 침대는 퀸사이즈로 매우 컸고, 당연히 행정복지센터에서 5만원이나 주고 버려야 한다. 그대로 말했더니, 여기서 3차 가관이자 명언

 

"2년간 잘 썼잖아. 사용료인셈 치고 버려줘."

기가 찬다. 내가 침대를 사달라고 했나? 기본 옵션 처리 비용을 세입자에게 '사용료' 명목으로 요구하는 개념 출타한 집주인은 진짜 놀라웠다. 자기 나이의 1/4밖에 안된다고 되도 않는 말에 네네하고 넘어갈 줄 알았나? 내가 지금까지 월세로 준 돈이 1500만원 가까이 되는데 5만원으로 가구 처리하기 싫어서 그걸 세입자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이때 진짜로 엄청나게 화를 내니까 그제서야 꼬리를 내린다.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도 부득부득 이사 업체 아저씨한테 저 침대 내려달라고 박박 우겨서 내가 열심히 저걸 왜 우리가 옮겨주냐. 사람 부르던지 아드님 부르던지 해라라고 했는데 계속 되도 않게 우기니까 착한 이사짐 아저씨가 결국 옮겨주셨다. 

 

끝까지 추한 집주인을 뒤로하고 친척댁으로 이사를 했다. 다행히 이후에 쓸데없이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약한 사이다 하나가 남아있다. 

 

 

 아직도 저 대학가 주변 원룸 가격이 뭐같은지 궁금해서 직방을 켰는데, 내가 있던 바로 그 방이다. 매물로 나왔다...ㅋㅋ 집주인 손자도 결국 못 살겠다고 나왔는지, 혹은 그냥 아직까지 안 팔리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실 상태다. 그리고 여기서 양아치 행적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월세를 얼마 줬다고? 60만원이다. 여기에 관리비(수도세만이지만) 포함이다. 보증금은 500이었다. 그런데 이건? 1000에 70을 받아먹으려고 한다. 양심이 출타한건 그대로다. 심지어 면적은 뻥이다. 저거의 반도 안된다. 직방 허위매물로 신고하려다 더 엮이기 싫어서 말았다. 내가 계속 살았으면 2달치 월세인 120은 적어도 받고, 중개비 30만원은 아꼈을 텐데 괜히 잘 있는 사람 쫓아내려다가 150 가까이를 손해본 셈이다. 정말 서울 대학교 주변 원룸 주인들을 왜 스크루지라고 부르는지 몸소 체험한 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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